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일방적인 관찰에서 시작되었다.
매일 여우의 상태를 체크하며 약과 먹이를 주었고, 그 녀석이 며칠 보이지 않으면 순식간에 닥칠 수 있는 모든 죽음을 상상하며 불안해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미가 어린 새끼들을 마당으로 데리고 올 때면, 숨죽이며 그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훔쳐보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여우를 관찰하듯 녀석 역시 나를 경계하며 관찰했다. 여우를 보는 나의 시선이 변화하듯이, 나를 향한 여우의 태도도 점점 바뀌어갔다. 나의 목소리에 익숙해지고, 냄새만으로 나와 이방인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녀석의 모습과 행동을 기록하는 일에 소소한 즐거움을 느꼈다.
이내 길들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반려동물을 길들이듯, 여우를 같은 방식으로 길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에 대한 갈등이 시작되었고, 위험에 빠진 여우의 새끼를 구출했을 때 밀려오는 안도감과 알 수 없는 감정들로 인해 그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여우 역시 나를 보며 갈등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나와 녀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고, 그 벽은 결국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이유로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의 엔딩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몇 년이 지나 그 때의 기록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때 남긴 여우에 대한 모든 기록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됐으나 가슴 먹먹한 연민을 남겼다. 마음 깊은 곳에 녀석에 대한 연민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때의 생생했던 경험을 전달하려고 가급적 감정을 억누르고 편집을 시작했다.
그 후로 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사실 그때의 경험과 기억은 시간의 속도 앞에서 점점 더 희미해졌다. 런던에서처럼 여우를 도시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과거의 연민도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지금의 이 다큐멘터리와 사진, 짧은 문구들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건져 올린 시간과 공간, 관계, 감정에 관한 가장 솔직한, 최소한의 사실 기록이다.
드라마는 없다.
오직 영상 끄트머리에 등장하는 여우의 완쾌된 모습, 그리고 녀석의 풍성한 꼬리가 드라마라면 드라마일까. 어느 한 개체가 긴 시간을 들여 질병을 극복하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전하는 감동. 그것이 나에게는 갈등의 근원이자, 보상이었다.
오늘 다시, 여우를 처음 만난 그 때를 떠올려본다.
Come to think of it, it all started with a single observation.
Each day I checked the mother fox’s condition and gave her some food and medicine. I felt nervous when she did not turn up for days; instantly thinking of the many ways she could have met her demise. Then one day, she re-appeared in the garden, except this time with young pups. I lost track of time as I spent every single moment watching the fox family. As I watched the fox, the fox warily watched me. As my view of the fox gradually changed, the fox’s attitude towards me gradually changed. She got used to my voice and started to identify me and other people by smell. I felt a little joy in documenting the behaviour of the little animal.
I thought about taming the fox in the same way I would train a pet animal.
My inner conflict began, and it peaked when I saved the fox pups from danger. The fox also confronted this conflict. However, from the beginning there had always been an invisible wall between me and the fox, and that wall was naturally forgotten because I had to leave. I probably should have known how this would end.
A few years later, I made a documentary film based on that record.
When I began recording the fox, I felt simple curiosity. When I left, I felt strong compassion. I deliberately suppressed these strong emotions as I began editing the film to convey my vivid experiences.
More time has passed since then.
In fact, the memories of that experience are fading as time passes because I no longer see foxes as I did when they snuck through London. The documents, photographs, and short writings here are the most candid and minimal factual statements of time, space, relationships, and emotions that I could take out of these past memories.
There is no drama.
The complete recovery of the fox with a bushy tail at the end of the film – it could be told as a drama. It is the same simple story of an animal recovering from disease.
Today, I recall the first time I met the fox.
매일 여우의 상태를 체크하며 약과 먹이를 주었고, 그 녀석이 며칠 보이지 않으면 순식간에 닥칠 수 있는 모든 죽음을 상상하며 불안해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미가 어린 새끼들을 마당으로 데리고 올 때면, 숨죽이며 그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훔쳐보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여우를 관찰하듯 녀석 역시 나를 경계하며 관찰했다. 여우를 보는 나의 시선이 변화하듯이, 나를 향한 여우의 태도도 점점 바뀌어갔다. 나의 목소리에 익숙해지고, 냄새만으로 나와 이방인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녀석의 모습과 행동을 기록하는 일에 소소한 즐거움을 느꼈다.
이내 길들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반려동물을 길들이듯, 여우를 같은 방식으로 길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에 대한 갈등이 시작되었고, 위험에 빠진 여우의 새끼를 구출했을 때 밀려오는 안도감과 알 수 없는 감정들로 인해 그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여우 역시 나를 보며 갈등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나와 녀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고, 그 벽은 결국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이유로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의 엔딩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몇 년이 지나 그 때의 기록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때 남긴 여우에 대한 모든 기록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됐으나 가슴 먹먹한 연민을 남겼다. 마음 깊은 곳에 녀석에 대한 연민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때의 생생했던 경험을 전달하려고 가급적 감정을 억누르고 편집을 시작했다.
그 후로 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사실 그때의 경험과 기억은 시간의 속도 앞에서 점점 더 희미해졌다. 런던에서처럼 여우를 도시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과거의 연민도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지금의 이 다큐멘터리와 사진, 짧은 문구들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건져 올린 시간과 공간, 관계, 감정에 관한 가장 솔직한, 최소한의 사실 기록이다.
드라마는 없다.
오직 영상 끄트머리에 등장하는 여우의 완쾌된 모습, 그리고 녀석의 풍성한 꼬리가 드라마라면 드라마일까. 어느 한 개체가 긴 시간을 들여 질병을 극복하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전하는 감동. 그것이 나에게는 갈등의 근원이자, 보상이었다.
오늘 다시, 여우를 처음 만난 그 때를 떠올려본다.
Come to think of it, it all started with a single observation.
Each day I checked the mother fox’s condition and gave her some food and medicine. I felt nervous when she did not turn up for days; instantly thinking of the many ways she could have met her demise. Then one day, she re-appeared in the garden, except this time with young pups. I lost track of time as I spent every single moment watching the fox family. As I watched the fox, the fox warily watched me. As my view of the fox gradually changed, the fox’s attitude towards me gradually changed. She got used to my voice and started to identify me and other people by smell. I felt a little joy in documenting the behaviour of the little animal.
I thought about taming the fox in the same way I would train a pet animal.
My inner conflict began, and it peaked when I saved the fox pups from danger. The fox also confronted this conflict. However, from the beginning there had always been an invisible wall between me and the fox, and that wall was naturally forgotten because I had to leave. I probably should have known how this would end.
A few years later, I made a documentary film based on that record.
When I began recording the fox, I felt simple curiosity. When I left, I felt strong compassion. I deliberately suppressed these strong emotions as I began editing the film to convey my vivid experiences.
More time has passed since then.
In fact, the memories of that experience are fading as time passes because I no longer see foxes as I did when they snuck through London. The documents, photographs, and short writings here are the most candid and minimal factual statements of time, space, relationships, and emotions that I could take out of these past memories.
There is no drama.
The complete recovery of the fox with a bushy tail at the end of the film – it could be told as a drama. It is the same simple story of an animal recovering from disease.
Today, I recall the first time I met the fox.